공지사항

[2016.12.1.] 세계 에이즈의 날, KNP+의 입장 "정부는 HIV/AIDS 감염인이 겪는 차별에 침묵하지 말라!"

20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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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일 세계 에이즈의 날,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의 입장 

 

“진료거부, 비밀누설, 강제검사, 혐오와 차별” 

정부는 HIV/AIDS감염인이 겪는 차별에 침묵하지 말라! 

 

한국 사회에서 HIV/AIDS감염인이 보고된 지 30년이 지났다. 그 사이 HIV 감염경로가 밝혀져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해졌고, 에이즈 치료도 발전을 거듭하여 치료제 복용만 꾸준히 잘하면 바이러스 미검출 상태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다. 물론 감염전파 위험도 거의 없고  HIV감염인도 건강한 아기를 출산할 수 있다. 감염내과 의사들은 에이즈가 더 이상 죽을병이 아니라고 말한다. 질병관리본부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감염인도 건강관리를 잘 하면 큰 어려움이 없이 생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의학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HIV/AIDS감염인이 건강하게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버겁게 느껴진다. 치료 잘 받으라고 격려 받아야 할 환자가 비난과 냉대 속에서 설자리를 잃는 게 감염인의 현실이다. 일반 시민들은 여전히 에이즈하면 “불치병, 죽음, 무서운 병, 문란한 성관계” 등이 연상된다고 말하고 있다. 에이즈에 덧씌워진 오해가 편견을 강화시키고 있고, 근거없는 공포를 확산시키는 에이즈 혐오 또한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다. 감염인들은 세상 밖으로 나서는 것이 더 두려워졌다. 

 

2016년 HIV/AIDS감염인의 삶은 어떠한가! 병원에서 진료거부와 차별진료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치료제를 복용하는 감염인의 경우 의학적으로 전파위험이 거의 없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현장에서 진료거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2016년 9월, 혈액투석이 필요했던 한 감염인이 15년간 다닌 병원에서 인력과 장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진료거부를 당하고 나서 해당 병원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였다. 2011년 “특수장갑”이 없다는 이유로 고관절 전치환술(인공관절 수술)을 거부했던 병원과 동일하다. 바로 세브란스병원이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교육과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라고 권고했지만, 지난 5년 동안 세브란스병원은 과연 차별적인 진료현장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병원이라고 자부하는 병원에서, 정부에서 지정한 에이즈 전문의료기관에서 벌어진 진료거부 사건을 보고 있자니 과연 세브란스병원이 감염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병원으로 남을 수 있을지 의심마저 든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는 세브란스병원을 감염인 진료거부 병원으로 규정하고 다른 감염인들에게 절대 추천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중증에이즈환자도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게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했지만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가 광고 포스터까지 제작해 배포하는 등 집단적으로 반대하고 나서고 있어 여전히 입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치료를 지속적으로 해야 건강하게 삶을 유지할 수 있는데 진료를 거부당한 감염인 당사자들은 모욕감, 수치심, 좌절감을 느끼게 되고, 치료를 스스로 방치하거나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마저 들지 않게 하고 있다. 과연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2016년 5월에는 서울지방경찰청 소속의 한 의무경찰이 헌혈 후 HIV 양성의심 통보를 받은 후 경찰병원으로 긴급후송되었다. 아무 정보도 없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불안했던 당사자는 경찰청 내 고충처리 상담전화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상담내용의 비밀은 지켜지지 않았고, 경찰청은 당사자의 상황을 더 궁지로 몰아넣는 대응책을 내 놓았다. 개인의 질병정보가 노출될 수 있게 내무생활을 했던 부대원 강제검사는 물론 내무반 소독까지 진행한 것이다.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 감염전파 위험이 전혀 없고 HIV 양성반응이 최종 확진판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모를 우려로’ 포장된 공포가 언론을 통해 확산된 것이다. 2016년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차별을 개선하라는 권고에 대해 정부의 무능과 침묵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2008년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보조교사로 근무하던 외국인이 HIV검사가 포함된 채용신체검사서 제출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회화지도(E2) 비자 소지 외국인은 현행 법 상으로 법죄경력증명서와 건강진단서(마약, 에이즈검사 포함)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이 사건의 당사자는 이 문제를 ‘인종차별’로 규정하고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와 2012년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2015년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외국인 회화지도 교사에 한정해 의무적으로 HIV검사를 받게 하는 것은 공중보건이나 그 밖의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한국정부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자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9월,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고 다시 권고를 하였다. 모든 회화지도 비자 외국인에게 에이즈 검진결과를 요구하는 것은 검열과 색출을 위한 차별적인 정책이고, 에이즈 예방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엔에이즈는 ‘가짜 안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본인의 동의 없이 행해지는 강제검사는 한국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군 입대과정에서, 교도소 입소과정에서 의무적으로 강제검사가 행해지고 있고, 검진결과를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전달하는지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병원 치료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자발적 검진보다 갑작스럽게 감염확진 결과를 알게 되어 ‘준비없는’ 충격으로 인해 본인의 마음을 돌 볼 틈도 없이 자포자기 심정으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비과학적인 정보에 기생하며 객관적인 사실마저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에이즈 혐오는 ‘죽음과 공포의 질병’으로서 에이즈를 인식하게 한다. 2016년 한 해 동안 성소수자 권리를 이야기되는 모든 곳에서 에이즈는 호명되었다. 군형법상 추행죄 합헌여부를 판단하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에이즈 혐오선동세력은 끊임없이 에이즈 확산의 책임을 성소수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선량한 국민들이 감염인 치료를 위해 세금폭탄을 맞는다는 억지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성애자보다 수십 배 감염위험이 높다는 비과학적이고, 부정확한 통계를 앞장세워 질병관리본부에서 감염경로를 구체적으로 발표하지 않는다고 항의하기도 하고, 메르스 바이러스와 HIV의 결합으로 슈퍼 신종 전염성이 나온다는 괴담을 퍼트리기도 했다. 한심한 주장이라고 치부하며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은 이 같은 주장들이 감염인의 심리를 위축시킬 뿐 아니라, 자발적인 에이즈 검사율을 높이고, 에이즈 예방을 이뤄야 하는 국가에이즈정책에도 방해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부는 비를 피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효과적인 에이즈 예방을 위해서는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없어져야 가능하다. 정부는 침묵하지 말라! 에이즈 혐오선동이 에이즈 예방을 실질적으로 방해하고, 감염인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말하라!


감염인 진료거부 문제가 임계치를 넘어섰다. 선량한 의료인을 만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진료거부 신고센터를 설립해 진료거부 경험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감염인을 상담하고 문제해결의 주체로서 적극 나서야 한다. 의료차별 예방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법제도를 시급히 정비해야 할 것이다. 


군 입대 과정에서, 교도소 입소과정에서, 병원 치료과정에서, 외국인 대상 검사를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지금의 에이즈 강제 검사 정책은 차별을 재생산하고, 개인의 질병정보를 노출시킬 위험이 더 높아졌다. 지금의 에이즈 검사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자발적 검사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12월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은 감염인 인권의 날이 되어야 한다. 에이즈 혐오가 한국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함께 행동하고 약속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감염인 인권이 제대로 서야 에이즈 예방을 제대로 이룰 수 있다.  


 

2016년 12월01일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