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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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한겨례21 인터뷰 빨간것은 아름답다 관리자 / 2015-12-31 / 1131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0773.html 


에이즈 30년, 침묵은 끝났다. 

이제는 질병이 아니라 혐오가 사람을 죽이는 시대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감염인의 주요 사망 원인은 자살이다. 병든 사회의 ‘에이즈 혐오증’은 건강한 HIV 감염인도 못 살게 한다. 

올해로 한국에서 에이즈 환자가 발견된 지 30년, 침묵이 길었다. 감염인 당사자가 나서서 ‘감히’ 인권을 주장할 엄두를 못 냈다. 겹겹이 쌓인 혐오의 벽이 존재를 가리고 발언을 막았다.


그래서 12월1일, 올해 ‘세계 에이즈의 날’은 각별하다. 그동안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감염인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인권운동이 벌어졌지만,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자구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HIV 감염인들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건강 정보를 나누고, 인권을 논했다. 

사랑방 하나만 있었으면 

몇 번의 계기가 있었다. 치료제가 좋아져서 에이즈는 관리만 잘하면 되는 질환이 됐지만, 인권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 2014년 국내 유일의 에이즈 환자 요양병원은 문을 닫았다. 인권침해 고발이 끊이지 않아서다.


 더불어 신의 이름을 빌려 아픈 이들을 더욱 아프게 하는 세력은 커졌다. 낙인이 예방을 대신하진 못해서, 2014년부터 한 해 신규 감염인이 1천 명을 넘어섰다.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장벽은 약한 이들을 벼랑으로 몰아간다. 고립된 방에서 약을 먹지 않아 병을 키우고, 죽을 지경이 돼서야 병원을 찾는 이들이 있다. 사회적 질병이 더해진 결과다. 여전히 지금도, 장례를 치를 이도 없는 무연고 죽음이 적잖다. 

‘침묵은 죽음이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고전적 구호는 ‘대(對) 사회적’ 의미만 갖지 않는다. HIV/AIDS 감염인 당사자들이 만나 함께 얘기를 나누고 상처를 보듬고 슬픔을 껴안는 것도 ‘침묵을 깨는’ 일이다. 


2013년 부산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태평양 에이즈대회(ICAAP)’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의 경험을 듣고 한국의 감염인들은 깜짝 놀랐다. 감염인 스스로 나설 만큼 인권이 보장돼 있어서다. 이런 경험을 ‘남의 일’로 둘 수는 없었다.



더불어 요양병원 인권침해와 직접 맞서 싸우면서 감염인 스스로 단단해졌다. 가톨릭 레드리본 감염인 모임, 건강나누리, 대구·경북 지역 HIV/AIDS 감염인 자조모임 ‘해밀’, 한국 청소년·청년 감염인 커뮤니티 ‘알’….


 흩어져 있던 감염인 모임이 힘을 합쳐서 마침내 한국 최초로 ‘HIV/AIDS 감염인연합회 KNP+’를 결성했다. 

단체가 들어선 이래 숙원 사업이 있었다. 인터넷 세상에 분자로 떠다니지 않고 입냄새 풍기는 사람으로 만날 ‘지상의 방 한 칸’이 절실했다. 서울 종로구 연립주택 반지하 24평, 마침내 마련한 ‘PL 사랑방’이 있다.


 PL은 ‘People Living with HIV/AIDS’의 약자로 감염인을 편견 없이 부르는 말이다. ‘가진 사람’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지난 11월25일 오후 4시, 사랑방에서 문수 KNP+ 상임대표가 일하고 있었다. 컴퓨터가 놓인 사무실 공간을 나가면 10여 명은 넉넉히 둘러앉을 너른 주방이 있다. 벽에는 ‘생로병사’를 겪는 모두에게 중요한 정보가 보인다.



 PL들이 마실을 다녀온 ‘장흥관광농원’ 안내지 속에서 그들도 우리처럼 즐기는 여가가 보인다. 책상에 놓인 국민임대주택 안내서는 주거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이 정보를 나눈 흔적이다. 간절히 원하면 만나게 되고 만나면 보인다.



“임대주택에 들어갈 자격이 되는데도 어떻게 신청할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임대주택 거주자가 아까운 월세를 내는 친구에게 가장 친절한 안내자가 된다. 

“나처럼 방치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PL(피엘) 사랑방은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도 마음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공간이다. PL 인권을 상징하는 배지(윗쪽), 일정을 알리는 알림판. 김진수 기자 


“국립의료원, 서울대병원이 가까워요.” 문수 대표 옆에 있던 권미란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가 말했다. 지방에서 검진받으러 올라온 PL이 들르기 좋은 위치란 것이다. 날마다 저녁 밥상을 나누는 이도 적잖다.



“오늘은 인터뷰한다고 일정에 적어뒀더니 오지를 않네요.” 문수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그가 가리킨 일정표에는 11월21일 ‘밥상모임’이 공지돼 있다. 

한 달에 두어 번 진행되는 밥상모임의 11월 주제는 ‘밥과 법’이었다. 공익법무법인 ‘희망을 만드는 법’의 한가람 변호사가 ‘죽음 이후의 법적 관계와 효력 있는 유언장 쓰기’를 주제로 밥상머리 강연을 했다.


 무연고 처리돼 장례 절차도 제대로 밟지 못하는 쓸쓸한 죽음이 있어서다. 이날 밥상에는 50여 명이 둘러앉았다. 공간이 없었으면 벌어지기 힘든 일이었다. 사랑방은 PL에게 여기가 끝이 아니라 계속되는 삶이 있다고 온기를 전한다. 

사랑방이 생기면서 KNP+를 책임질 활동가도 생겼다. 문수 대표가 월급 80만원을 받고 상근을 시작한 것이다. 권미란 나누리+ 활동가는 “그의 추진력이 없었다면 KNP+가 만들어지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50대인 문수 대표는 2006년을 잊지 못한다.



 고향에서 서울로 이사 온 그는 당시 고열에 시달렸다. 병원에 입원해 간병할 사람을 절박하게 찾았지만, 어디서도 응답이 없었다.


국가 지원을 받는 에이즈 예방 단체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위기를 넘겼지만, “나는 방치당했지만 나처럼 방치당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고향에서 처참한 현실을 목격한 터였다. 그는 “보건소 직원들이 도움을 요청해 혼자서 죽어가는 사람, 입원비가 없어서 모텔방을 잡고 병원 다니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고 돌이켰다.


 지구 곳곳에는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며 현실에 눈떠가는 ‘작은 게바라’들이 있다. 에이즈인권운동을 하는 이들이 마주치는 현실이다. 

이날 인터뷰를 하는 동안 권미란 나누리+ 활동가가 기자설명회 취재 요청서를 쓰고 있었다. 기자회견도 아니고 기자설명회인 이유는 설명이 필요하다. 에이즈 발생 30주년을 계기로 ‘2016 한국 HIV/AIDS 낙인지표 조사’가 시작된다.


유엔에이즈(UNAIDS)가 의뢰해 KNP+가 한국의 인권 상황을 조사한다. 감염인 조사원 15명이 감염인 150명을 만나 실태 조사를 하는 것이다. 

“요양병원 사태를 알리자 유엔에이즈 아시아·태평양 지부는 믿지 않았어요. 한국 같은 경제 수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을 못한 거죠. 직접 와서 보라고 하자 왔어요. 한국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권미란 활동가의 설명이다.




 마침 유엔에이즈는 낙인지표 조사를 벌이고 있었고, 한국에도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기금이 문제였다. 유엔에이즈는 처음 “조사기금 지원이 어렵다”고 했지만, 국가의 지원도 민간의 후원도 어려운 한국 상황을 수긍하게 됐다. 결국 유엔에이즈가 자체 예산으로 조사를 지원했다. ‘경제대국 10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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